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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방구석 극장
악인이 선인으로 바뀌는 이야기, 그게 정말 '구원'일까요? 영화 크리미널을 보고 나서 저는 한동안 이 질문을 놓지 못했습니다. 대형 사고 후 극심한 기억의 혼란을 겪었던 제 경험이 고스란히 겹쳐 보였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기억이 뇌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그 공포, 저는 이 영화가 그냥 SF 액션으로만 읽히지 않았습니다.크리미널, 죽은 요원의 기억, 흉악범의 뇌에 이식되다영화는 런던 한복판에서 시작됩니다. CIA 정예 요원 빌 포스터가 비밀 임무 수행 중 반정부 테러 조직의 추격을 받다가 끝내 목숨을 잃습니다. 문제는 그가 전 세계 미군 무기 통제 시스템을 해킹한 천재 해커 '더치맨'의 소재와 암호를 아는 유일한 인물이었다는 점입니다. 정보가 사라지면 테러를 막을 방법도 없어지는 상황, CIA는 극단적인 선..
몇 년 전, 해외 여행 중 폭우와 산사태로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채 갇혔던 경험이 있습니다. 전기도, 인터넷도 사라진 그 어둠 속에서 느꼈던 공포는 지금도 선명합니다. 그래서인지 프랑스 재난 영화 서바이브를 보는 내내 단순한 관람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이 스크린 위로 겹쳐지는 묘한 감각을 떨쳐낼 수 없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설정은 신선했지만 속내는 아쉬웠습니다.서바이브, 바다가 사라진 지구 — 하이콘셉트 재난 설정의 매력과 한계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요트 여행을 즐기던 가족이 눈을 뜨니 광활한 바닷물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다는 이 황당한 설정이, 처음 10분 동안은 꽤 강렬하게 작동합니다.영화가 제시하는 재앙의 원인은 지구자기극역전(Geomagnetic Pole Reve..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눈을 뜨고, 같은 길을 걷고, 같은 사람들과 엇비슷한 대화를 나누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건지, 그냥 반복되는 화면을 재생하고 있는 건지. 저도 한때 그 무기력함 속에서 차라리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영화 는 바로 그 감각을 정교하게 건드리는 작품입니다.아주 작고 완벽한 것들의 지도, 타임루프 속 두 청춘이 그려나간 일상의 발견이 영화의 구조는 타임루프(Time Loop)라는 장치를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타임루프란 특정 시간대가 무한히 반복되는 서사 설정으로, 하루가 끝나면 다시 그 하루의 시작으로 되돌아가는 구조를 말합니다. 는 이 장치를 SF적 스펙터클로 소비하는 대신, 청춘의 권태와 상실이라는 감정의 그릇으로 사용합니다..
남편이 야근이라며 집에 늦겠다고 문자를 보내는 밤, 뭔가 이상한데 그냥 넘어가야 할지 따져야 할지 모르는 채 소파에 앉아 있던 기억이 있으시다면, 이 영화가 낯설지 않으실 겁니다. 저도 한때 믿었던 관계에서 연이어 배신을 당한 뒤 내 삶의 운전대를 누구에게라도 넘겨버리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조앤 카바스 감독의 2012년 캐나다 영화 이프 아이 워 유(If I Were You)는 그 감각을 아주 정확하게 건드렸습니다.이프 아이 워 유, 남편의 불륜을 발견한 아내와 불륜녀가 한 술집에 마주 앉기까지영화는 단골 베이커리에서 시작됩니다. 우아한 중년 여성 매들린이 남편 폴이 가장 좋아하는 케이크를 사러 갔다가 마지막 남은 것을 놓치는 장면, 사소하지만 불길한 첫 장면입니다. 곧이어 야근이라며 차갑게 전화..
어릴 적 고향 골목에 수십 년째 자리를 지켜온 작은 노포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거대 프랜차이즈 자본이 그 자리를 밀어붙이기 식으로 개발하겠다며 철거를 통보했고, 동네 어르신 한 분이 홀로 그 앞을 막아섰습니다. 쇠약해 보이는 몸, 초라한 행색이었지만 그 눈빛만큼은 서슬이 퍼랬습니다. 그 장면이 머릿속에 박혀 있다가, 영화 을 보는 내내 자꾸 떠올랐습니다. 산소통에 의지하는 70대 노인이 전직 KGB 암살자였다는 설정 하나로 거대 자본의 횡포에 맞서는 이 영화는, 그 기억과 묘하게 포개졌습니다.더 라스트 스탠드 오브 앨런 콜, 쇠약한 외피 속의 날카로운 발톱, 그리고 KGB 반전 서사주인공 앨런 콜은 첫 등장부터 심상치 않습니다. 깊게 패인 주름과 관록이 묻어나는 얼굴, 헤비 스모커 특유의 걸걸한 목소리..
지독한 이별을 겪고 나서 한동안 인공지능 스피커에게 말을 걸었던 적이 있습니다. 대답이 돌아오는 것 자체가 위안이 되던 그 밤들이, 영화 를 보는 내내 자꾸 떠올랐습니다.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이 작품은 AI 운영체제와 사랑에 빠지는 남자의 이야기지만, 진짜 핵심은 따로 있습니다. 우리가 진짜 관계 대신 무엇을 선택하고 있는가, 그 질문입니다.Her, 타인의 마음을 대필하는 남자와 AI 사만다가 맺은 감정적 유대주인공 테오도르는 대필 편지 작가입니다. 매일 다른 사람의 가장 뜨거운 감정을 타이핑하지만, 정작 자신의 감정은 얼어붙어 있습니다. 전 아내 캐서린과의 이혼 서류에 서명조차 못 한 채 비디오 게임과 익명 통화로 밤을 채우던 그가, 어느 날 맞춤형 인공지능 운영체제 OS1을 구매합니다. 여기서 OS..
아무도 자신을 쫓지 않는데 혼자 도망 다니는 남자. 1997년작 의 설정입니다. 처음 이 전제를 접했을 때 저도 피식 웃었습니다. 직장에서 누명을 쓸 뻔했던 그 아찔한 기억이 스쳐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오해 앞에 무너졌던 경험이 있는 분이라면, 이 영화가 단순한 웃음 그 이상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The Wrong Guy, 착각이 만들어낸 추격전, 슬랩스틱 코미디의 구조적 정교함이 영화의 핵심 구동 원리는 서사적 아이러니(narrative irony)입니다. 여기서 서사적 아이러니란 관객은 진실을 알고 있는데 주인공만 모른 채 행동하는 구조를 말합니다. 넬슨은 "경찰이 나를 추적하고 있다"고 굳게 믿지만, 실제로 FBI와 형사들은 키 181cm, 몸무게 83kg의 실제 킬러를 쫓고 있을 뿐 넬슨에게는 ..
솔직히 이 영화를 다시 틀었을 때, 저는 한동안 화면을 멍하니 바라봤습니다. 멕시코 빈민가 소년이 EPL 무대에 서는 이야기인데, 어느 순간부터 산티아고의 얼굴이 아니라 제 지난날이 겹쳐 보이기 시작했거든요. 오랫동안 쫓고 싶었던 목표 앞에서 "네 분수에 맞게 살아라"는 말에 스스로 꿈을 접으려 했던 기억, 그게 다시 올라왔습니다. 영화 골!은 그런 사람에게 묘하게 아픈 작품입니다.골!, 멕시코 빈민가에서 뉴캐슬까지, 산티아고가 밟아온 길저도 처음엔 이 영화가 그냥 흔한 스포츠 성공 드라마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보고 나니 예상 밖이었습니다. 주인공 산티아고 뮤네즈의 출발점이 워낙 바닥이어서 그런지, 스크린 위에 펼쳐지는 장면들이 유난히 묵직하게 다가왔습니다.산티아고는 멕시코의 빈민촌에서 ..
저승사자가 인간의 몸을 빌려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 1998년 개봉한 은 지금도 "인생 영화" 목록에 단골로 등장하는 작품입니다. 저도 처음 봤을 때는 그냥 감동적인 로맨스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뜯어보니, 이 영화를 둘러싼 시선은 생각보다 훨씬 갈립니다.환청, 저승사자, 그리고 거부할 수 없는 거래65세 생일을 앞둔 대기업 회장 빌 패리쉬는 어느 날부터 정체 모를 환청을 듣기 시작합니다. 그러던 중 딸 수잔이 커피숍에서 우연히 마주친 청년은 그날 교통사고로 즉사하고, 저승사자는 그 청년의 몸을 빌려 빌 앞에 나타납니다. 제안은 단순합니다. "당신의 사망 날짜를 미뤄줄 테니, 인간 세계를 구경시켜 달라."이 장면에서 영화는 의인화(personification) 기법을 매우 적극적으로 활용합니..
바보처럼 살면 정말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어린 시절 저는 눈치가 없고 행동이 느리다는 이유로 또래들 사이에서 겉돌았습니다. 그러다 수십 년이 지나 다시 꺼낸 이 영화를 보며 그 시절의 저를 떠올렸고, 동시에 이 작품이 얼마나 교묘하게 설계된 이야기인지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포레스트 검프, 경계성 지능에서 미국의 영웅으로, 그 믿기 힘든 서사포레스트 검프의 IQ는 75입니다. 여기서 IQ 75란 의학적으로 경계성 지능(Borderline Intellectual Functioning)에 해당하는 수치로, 일반 교육 과정을 따라가기 어렵고 사회적응에 상당한 어려움이 따를 수 있는 인지 범위를 의미합니다. 거기다 척추까지 굽어 다리에 교정 보조 장치를 달아야 했던 포레스트는 어떤 기준으로 봐도 평탄한 삶을 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