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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방구석 극장
중국 영화 황후화 리뷰 (색채미학, 파시즘적미학, 원걸) 본문
이 영화를 보면서 어린 시절 제가 드나들었던 한 친척 가문의 저택이 떠올랐습니다. 값비싼 대리석과 황금빛 조명으로 치장된 그 집은 멀리서 보면 성벽처럼 찬란했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재산을 둘러싼 날카로운 신경전이 공기를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장예모 감독의 황후화는 그 기억을 스크린 위에 옮겨놓은 것 같아 묘하게 불편하고, 그래서 끝까지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황금빛 독약과 황실 권력의 민낯 — 색채미학이 숨긴 것
일반적으로 장예모 감독의 영화는 색채 하나만으로도 논문 한 편이 나온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황후화 역시 그 평판에 걸맞게, 황금과 노란 국화라는 단 두 가지 시각 원소를 극단까지 밀어붙인 압도적인 색채미학(Color Aesthetics)을 선보입니다. 여기서 색채미학이란 단순히 화면이 예쁘다는 뜻이 아니라, 특정 색이 서사와 결합하여 감정적·이념적 의미를 생산하는 영화 언어 체계를 말합니다.
제가 직접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건, 황금색이 처음에는 황실의 찬란함을 상징하다가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점점 감금과 질식의 색으로 변한다는 점이었습니다. 황후는 매시간 요란한 의식을 치르며 탕약을 전달받는데, 독이 든 탕약을 먹고도 나서야 하는 황실 행사의 화려함이 그 독의 쓴맛을 가리는 황금빛 포장지처럼 기능합니다. 이러한 시각적 아이러니는 분명히 의도된 연출입니다.
문제는 이 연출이 과연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입니다. 황제는 황후의 가문이 가진 정치적 세력을 경계하는 동시에, 탕약 속 독으로 황후를 서서히 무력화시키는 가스라이팅(Gaslighting)을 자행해 왔습니다. 가스라이팅이란 상대방의 현실 인식을 지속적으로 왜곡하여 심리적으로 지배하는 조작 행위를 말합니다. 황제가 황후 앞에서 "약을 남겼다"는 고자질을 듣고 짐짓 엄한 얼굴로 황후에게 남은 독약을 마저 마시도록 강요하는 장면은 이 구도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 친척 가문에서도 비슷한 풍경을 본 적이 있습니다. 겉으로는 걱정하는 척 말을 건네면서 실제로는 상대방을 옭아매는 사람들, 그 표정이 황제의 얼굴과 겹쳤습니다.
황후와 태자 사이의 금기된 관계, 그리고 황후의 반란 계획은 이런 맥락에서 읽어야 합니다. 단순한 욕망이 아니라, 느린 죽음을 강요받아온 존재의 최후 저항입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비극적인 인물은 둘째 아들 원걸입니다. 황실의 권력 암투에 관심이 없었던 그는,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독을 먹여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이미 질 수밖에 없는 싸움에 뛰어듭니다. 오직 어머니를 향한 사랑 때문에.
황후화의 색채미학이 가진 핵심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황금색: 권력과 통제의 상징. 찬란할수록 그 안에 갇힌 자의 고통을 은폐하는 기능
- 노란 국화: 중양절 축제의 상징인 동시에, 반란군이 두른 환호와 저항의 표식
- 피와 국화의 교차: 반란 진압 이후 시체를 치우고 국화 카펫을 다시 까는 장면은 권력의 기억 삭제 능력을 시각화
영화의 색채 전략은 분명히 성공적입니다. 다만 제가 경험상 이건 좀 다르다고 느낀 것은, 이 색채가 결국 서사의 빈곤을 가리기 위한 과잉으로 흘러가는 지점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점이었습니다.
파시즘적 미학의 그림자와 원걸이라는 균열
일반적으로 장예모 감독은 붉은 수수밭, 홍등 같은 초기작에서 중국 사회의 억압 구조를 날카롭게 비판한 감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황후화를 보고 나서 제가 느낀 불편함은 바로 그 시선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는 데 있었습니다.
영화의 결말부에서 황제의 친위대는 원걸의 반란군을 광장 중앙으로 몰아넣고 완전히 몰살시킵니다. 그 직후 수천 명의 궁녀와 내시가 개미 떼처럼 쏟아져 나와 시체와 피를 치운 뒤, 단 몇 분 만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노란 국화 카펫을 다시 깔아버립니다. 이 장면은 감독이 권력의 폭력성을 고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폭력성의 완벽함을 스펙터클로 전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파시즘적 미학(Fascistic Aesthetics)이라는 개념과 연결됩니다. 파시즘적 미학이란 거대한 집단적 스펙터클, 완벽한 질서와 통제의 시각화, 그리고 개인의 저항이 국가 권력 앞에 얼마나 무력한가를 웅장하게 전시하는 예술 양식을 가리킵니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1935년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처음 개념화한 이 미학적 패턴은, 이후 수전 손택(Susan Sontag)의 파시즘의 매혹적 이미지 분석으로 확장되어 현대 영화 비평에서도 유효하게 사용됩니다.
제가 직접 이 장면들을 반복해서 돌려보면서 확인한 건, 황제가 단 한 번도 도덕적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황후는 독에 중독되어 무너지고, 원걸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막내 원성은 황제의 손에 죽습니다. 그런데 황제는 폭죽이 터지는 밤하늘 아래 여전히 황위에 앉아 있습니다. 이건 비극적 서사를 넘어, 권력에 저항하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가를 대중에게 내면화시키는 서사 구조입니다.
물론 이렇게 보는 것이 과도한 해석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영화를 단순히 막장 황실 드라마로 즐기는 방식도 충분히 유효하다는 의견이죠. 하지만 제 경험상 화려함이 극도로 과잉될 때, 그 아래에는 반드시 감추려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그 친척 가문의 대리석 저택이 그랬던 것처럼.
수전 손택이 파시즘적 미학의 핵심 특성으로 제시한 항목들과 황후화의 연출을 비교해보면 상당 부분 겹칩니다.
- 거대한 군중 배치와 기하학적 질서의 시각화
- 개인의 희생이 집단의 질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처리됨
- 권력자의 완벽한 승리가 스펙터클로 제시됨
이것이 장예모 감독의 의도적 선택인지, 아니면 천문학적 제작비를 투입한 중국 자본의 논리가 감독의 비판적 시선을 잠식한 결과인지는 여전히 논쟁적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후자에 가깝다고 봅니다. 그 화려함이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공허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정리하자면, 황후화는 분명히 볼 가치가 있는 작품입니다. 색채미학 측면에서 이만큼 압도적인 영화는 흔하지 않고, 공리와 주윤발의 연기 대결은 그 자체로 볼 만합니다. 다만 이 영화를 단순히 시각적 쾌감으로만 소비하고 끝낸다면, 그건 황제가 원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본 셈이 될지도 모릅니다. 아름다운 국화 카펫 아래 무엇이 묻혀 있는지를 함께 보는 것, 그것이 이 영화를 제대로 보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