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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영화 추천]영화 퍼스트 러브 하츠코이 리뷰(첫사랑, 기억상실, 신파 클리셰) 본문
오래된 노래 한 곡이 불쑥 흘러나오는 순간,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걷다가도 발이 멈춰버린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겁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우타다 히카루의 'First Love'를 카페에서 우연히 듣던 날, 까마득하게 묻어뒀던 첫사랑의 냄새가 코끝을 찌르듯 밀려왔습니다. 그 감각 하나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퍼스트 러브 하츠코이를 끝까지 봤는데, 끝나고 나서 든 감정은 벅차오름과 씁쓸함이 동시에 뒤엉킨 것이었습니다.
퍼스트 러브 하츠코이, 첫사랑이 바꿔놓은 두 사람의 생애
일반적으로 첫사랑 드라마는 운명적 만남에서 시작해 이별로 끝난다고 알려져 있지만, 퍼스트 러브 하츠코이는 그 이별 이후의 20년을 정면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제 경험상 꽤 결이 달랐습니다. 승무원을 꿈꾸던 소녀 야에와 학교의 문제아였던 하루미치. 두 사람의 이야기는 1990년대 홋카이도의 라일락 향기처럼 청량하게 출발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하루미치의 동기입니다. 중학교 3학년까지 전형적인 비행 청소년이었던 그가 야에를 보는 순간 완전히 달라집니다. 야에와 같은 고등학교에 가기 위해 스스로 공부를 시작하고, 이후 야에의 한마디에 자극받아 항공자위대 조종사라는 목표를 세웁니다. 이 과정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반응성 동기 부여(reactive motivation)에 가깝습니다. 반응성 동기 부여란 외부 자극, 특히 특정 인물에 대한 감정이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는 심리 기제를 말합니다. 하루미치의 인생 궤적 전체가 이 개념으로 설명됩니다.
드라마는 장거리 연애(Long Distance Relationship, LDR)의 심리적 마모를 꽤 현실적으로 그립니다. LDR이란 물리적 거리가 커플 사이의 정서적 소통 빈도와 질을 저하시키는 관계 유형으로, 상호 오해와 감정의 괴리가 누적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도쿄의 대학과 자위대 훈련소 사이의 거리는 결국 두 사람을 다투게 만들고, 그 싸움 끝에 야에는 교통사고를 당합니다. 삿포로에서 택시를 몰고 있는 38살의 야에, 도쿄 빌딩에서 경비 일을 하는 38살의 하루미치. 둘 다 꿈에서 멀어진 채 살아가는 2018년의 모습은, 제가 직접 봤을 때 처음 몇 분간은 그냥 평범한 중년의 일상으로 읽혔습니다. 그러나 교차 편집이 쌓이면서 이 일상이 사실은 서로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무게감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고, 그 순간부터 완전히 빠져들었습니다.
퍼스트 러브 하츠코이가 서사 구조에서 선택한 핵심 장치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비선형 교차 편집: 1990년대 과거와 2018년 현재를 번갈아 보여주며 감정을 누적시키는 방식
- 색채 미장센: 파란색(야에의 꿈과 자유)과 라일락(두 사람의 추억)을 반복 등장시켜 감정의 상징어로 사용
- 음악 서사: 우타다 히카루의 곡들이 장면 전환이 아닌 플롯 장치로 기능
기억상실 설정, 낭만인가 편의인가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드라마 초반에 기억상실(amnesia)이 핵심 플롯으로 등장한다는 걸 알고도, 이 정도로 서사 전체를 지배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기억상실이란 뇌 손상이나 심리적 외상으로 인해 특정 기간이나 특정 인물에 관한 기억이 인출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의학적으로 교통사고 후 '특정 인물과의 몇 년간의 기억'만 정밀하게 소거되는 사례는 거의 보고된 바가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기억상실 드라마는 신파적 감정을 극대화하는 수단으로 잘 작동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 드라마에서는 그 장치가 오히려 두 인물이 맞닥뜨려야 할 진짜 갈등을 회피하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야에가 기억을 잃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우리가 왜 헤어졌는가'를 직접 마주하고 싸우고 화해하는 과정을 생략합니다. 대신 서사는 '기억이 돌아오는가'라는 수동적 미스터리로 대체됩니다. 이건 마치 관계의 핵심부에 접근하기 직전 카메라를 끊어버리는 편집과 같습니다.
더 날카롭게 말하자면, 기억상실이라는 플롯 치트키(plot cheat)는 하루미치를 도덕적으로 무결한 인물로 만들기 위한 장치처럼 보입니다. 플롯 치트키란 서사 내 인과율이 요구하는 갈등과 책임을 우회하기 위해 작위적으로 삽입된 외부 요인을 뜻합니다. 하루미치는 결정적으로 야에와 싸운 뒤 심한 말을 내뱉었습니다. 그 말이 야에를 집 밖으로 나서게 했고 사고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야에의 기억이 사라짐으로써 그 책임은 유야무야됩니다. 하루미치가 자신의 잘못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장면은 드라마 내내 제대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 지점이 제가 보기에 이 드라마가 가진 가장 큰 서사적 공백입니다.
신파 클리셰가 지운 사람들, 츠네미와 야에의 결혼
드라마 전체에서 가장 안타깝다고 느낀 인물은 야에도 하루미치도 아니었습니다. 하루미치의 오랜 여자친구인 츠네미였습니다. 카타르시스(catharsis)란 문학·영화에서 관객이 인물의 감정에 이입하며 억눌린 정서를 해소하는 경험을 뜻하는데, 이 드라마는 츠네미를 희생시킴으로써 주인공들의 재회에 카타르시스를 부여하는 구조를 채택합니다. 지진의 공포 속에서도 하루미치를 지탱했던 그녀가 결국 웨딩드레스를 입어보며 혼자 씁쓸해하다 하루미치를 보내주는 장면은, 드라마가 추구하는 낭만주의가 얼마나 주변 인물에게 가해적일 수 있는지를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야에의 결혼 생활 묘사도 같은 맥락에서 비판받아야 합니다. 부유한 의사 가문은 오로지 야에를 억압하는 장치로만 기능합니다. 시어머니는 야에의 직업을 무시하고, 남편 유키토는 남편답지 않게 그려지며, 야에는 하루도 자유롭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이 묘사는 계급적 갈등이나 가부장적 결혼 제도의 복잡한 내면을 짚어내기보다는, '야에는 하루미치와 함께해야 했다'는 결론을 정당화하기 위한 배경으로 소비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의 미덕은 분명 존재합니다. 카세트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온 'First Love'를 듣는 순간 야에의 기억이 무너져 내리는 장면, 오타루 타임캡슐 속에서 꺼낸 하루미치의 편지를 읽으며 그녀가 오열하는 장면은 제가 직접 봤을 때 눈물을 참기가 어려웠습니다. 정서적 공명(emotional resonance)이란 관객이 인물의 감정을 마치 자신의 것처럼 느끼는 체험을 의미하는데, 이 두 장면은 그 어떤 기교 없이 그 공명을 만들어냅니다.
퍼스트 러브 하츠코이는 찬란한 영상미와 우타다 히카루의 음악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무기 때문에 서사의 허점이 쉽게 가려집니다. 기억상실과 우연의 남발, 주변 인물의 소모적 희생이라는 낡은 신파 문법을 걷어내고 보면, 이 드라마는 아이슬란드의 설원 위에서 두 사람이 포옹하는 판타지로 현실을 봉합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저는 이 드라마를 보기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눈물이 났다는 것은, 잊은 줄 알았던 감정이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니까요. 비슷한 아련함을 품고 있는 분이라면 한 번쯤 보셔도 좋겠지만, 서사의 빈틈을 그냥 넘길 수 없는 분이라면 감정보다 이성이 먼저 발동할 수 있다는 점은 미리 알고 시작하시길 권합니다.
